2013년 1월 13일 일요일

[율촌 공동기획 Business Law&Case] ⑫ 내 증거를 다 내놓고 소송을 하라고?

원본 :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2&no=643138

[율촌 공동기획 Business Law&Case] ⑫ 내 증거를 다 내놓고 소송을 하라고?

eDiscovery의 중요성에 대하여 자세히 기술한 기사입니다. 페이스북으로 공유한 기사 보기 [율촌 공동기획 Business Law&Case] ⑫ 내 증거를 다 내놓고 소송을 하라고? 기사입력 2012.10.05 17:51:38 | 최종수정 2012.10.26 15:26:41 00 기사 나도 한마디 “소송은 각자 자기가 가진 증거로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익숙한 소송 구조하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 세계 어디서나 모두 당연한 일일까? 우리나라가 속해 있는 대륙법계 국가들에서는 각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증거를 제출해서 소송을 하는 게 원칙이다. 그런데 그런 제도 하에서도 자기가 가진 증거로만 소송을 해야 한다면 불공평하고 억울한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의료사고를 당해 의사나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피고에게 잘못이 있다는 점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증거인 진료 기록은 피고의 지배하에 있다. 만약 피고가 소송에서 이를 제출하지 않으면 원고로서는 제대로 싸워볼 수 있는 무기조차 갖기 어려울 수 있다. 문서제출 의무 범위 확대 추세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우리나라 민사소송법은 일정한 범위 내에서 소송의 상대방이나 제3자에게 서류를 제출할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에 따라 법원이 피고에게 특정한 문서의 제출을 명령했는데도 피고가 이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법원은 그 문서에 기재된 내용에 대한 원고의 주장을 진실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문서제출명령 제도로 우리나라에서도 증거의 구조적 편중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당사자 사이의 불평등은 어느 정도 시정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 와서는 이 제도가 과거보다 더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고 법원이 인정하는 문서제출 의무의 범위도 사실상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문서제출명령 자체가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문서를 어느 정도 특정해 이뤄지게 되고 문서를 제출하지 않은 당사자는 당해 소송에서 당해 증거와 관련된 불이익만을 받기 때문에 소송당사자가 그 외의 커다란 피해를 보는 일은 상정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사정은 영미법계 국가에 가면 완전히 바뀌게 된다. 영미법계 국가의 민사소송은 각자가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서류를 광범위하게 요구할 수 있는 증거개시(Discovery나 Disclosure) 제도를 근간으로 해 이뤄지고 이에 대한 법원의 제재 역시 다양하고도 중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미국의 증거개시 제도는 여러 가지 면에서 악명이 높다. 미국에서 민사소송을 진행하는 경우에는 소송이 시작된 얼마 후에 상대방에게 소송의 쟁점과 관련된 광범위한 서류의 제출과 상대방 소속 증인들에 대해 며칠씩 이어지는 증인신문(Deposition)을 요구할 수 있다. 이러한 증거개시 절차에서의 증거제출 요구는 우리나라의 문서제출명령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포괄적이고 방대하다. ‘당해 사건과 관련된 기간 전체에 대해 상대방 및 상대방의 관계 회사, 그 전·현직 임직원, 그 계약 상대방 등이 가지고 있었거나 현재도 가지고 있는 일체의 서류’를 달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증거개시를 위한 공방이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법원은 대부분 광범위한 증거개시 요구를 들어주는 편이고 당사자가 이러한 증거개시 요구에 불응하거나 제대로 응하지 않는 경우에는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변호사들에게도 제재를 한다. 미국의 연방 민사소송법에 따르면 증거개시 절차에서 당사자가 증거 제출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경우 법원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당해 증거에 그 내용이 있다고 판단하고, 더 나아가 제출을 거부한 당사자가 증거를 향후에라도 당해 소송에서는 사용할 수 없게 하거나 증거를 제출할 때까지 소송을 중지한다. 또 제출을 거부한 당사자가 패소하는 판결을 선고하거나 심지어는 제출 의무 불이행을 법정 모독에 해당하는 것으로 취급해 형벌을 부과하고, 변호사가 공모했다는 이유로 법원이 변호사에게 제재를 하는 경우도 제법 보인다. 그런데 요즘과 같이 서류의 대부분이 이메일과 파일 등의 전자 문서의 형태로 작성되거나 보관되는 경우 증거개시의 대상이 되는 자료를 제대로 찾아서 빠짐없이 제출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전자 문서와 전자 자료에 대한 증거개시를 ‘E-Discovery’라고 부르는데 E-Discovery는 미국 연방 민사소송법의 2006년도 개정의 주요 내용이 됐다. E-Discovery의 도입은 미국 내에서 증거개시에 대한 당사자들과 변호사들의 업무 방법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것은 물론이고 E-Discovery를 보좌하는 기술적 업무를 담당하는 회사들이 생겨나게 하는 등 사실상 새로운 산업을 탄생시키기에 이르렀다. E-Discovery 원칙 제대로 이해해야 E-Discovery의 도입으로 회사가 보관하고 있는 전자적 형태의 문서를 제대로 보존하고 검색해 제출하는 것에 대한 당사자와 변호사의 부담은 증가됐다. 2005년 퀄컴과 브로드컴 사이에 시작된 기술 특허 관련 분쟁에서 퀄컴은 무려 20만 페이지에 달하는 이메일과 전자 문서를 제출해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E-Discovery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과오를 범하게 됐다. 그 결과 퀄컴이 소송 자체에서 패소한 것은 물론 퀄컴의 변호사들까지도 ‘소송을 위한 증거 보존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증거를 은닉하는 데 참여했다’는 이유로 징계까지 받아야 했다. 당시 퀄컴이 유수의 로펌을 선임해 소송을 진행했었기 때문에 이 일은 E-Discovery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에 대한 예로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E-Discovery 도입 초기에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업들과 E-Discovery가 무슨 상관이 있으랴 싶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들의 다양한 해외 진출 결과로 중소기업들까지도 종종 국제 분쟁에 휘말리게 되고 그 사이 영미법계 국가들에서는 E-Discovery가 원칙적인 증거개시의 형태로 자리를 잡아가게 됨에 따라 우리 기업들 역시 이 제도를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커지게 됐다. 실제로 우리 기업들이 영미법계 국가에서 소송 등을 당해 증거개시 요청을 받은 상황에서 증거 제출을 도운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우리 기업들이 규모를 불문하고 어려움을 호소하거나 납득하지 못하는 사항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우선 회사 내부에 제대로 공지된 문서 관리 방침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특히 E-Discovery와 관련해서는 문서의 보관에 관한 지침도 중요하지만 폐기를 위한 지침이 더더욱 중요하다. 어느 회사라도 매일 방대한 양으로 생산되는 모든 전자문서를 다 보관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회사로서는 일정한 원칙을 정해 정기적으로 전자문서를 폐기해야 한다. 이 경우 그 원칙을 명확하게 정한 뒤 이를 회사 내부에 제대로 공지하고 직원들로 하여금 지키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증거의 악의적 삭제는 당연히 제재의 대상이 되는 반면 회사의 합리적인 정책에 따라 정기적으로 이뤄지는 폐기 절차로 증거가 폐기된 경우에는 법원이 증거 폐기 자체에 대해 제재를 가하지는 않는다. 문서 관리 방침이 제대로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실제 직원들이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너무 많은 양의 불필요한 서류가 제대로 분류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거나 실제로 필요한 서류가 없어지게 되는 문제가 있다. 불필요한 서류가 분류도 제대로 되지 않고 보관돼 있는 경우 제출 대상 서류를 찾기 위한 작업에만도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필요한 서류가 폐기 지침에 맞지 않게 폐기된 경우에는 이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 법원으로부터 제재를 받게 된다. 불리한 서류 제출 미루다 더 큰 손해 또한 변호사와의 교신 등 증거제출 의무의 예외가 되는 서류가 제대로 표시돼 있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영미법상 인정되는 ‘변호사-의뢰인 특권(Attorney-Client Privilege)’은 증거개시 요구에도 불구하고 증거를 제출하지 않아도 되는 중요한 예외에 해당한다. 물론 변호사와의 교신이라고 해 무조건 항상 예외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예외에 해당될 가능성이 큰 증거라는 점이 이메일이나 서류 자체에 표시돼 있다면 처음 서류를 모으고 파악하는 단계에서 시간과 비용을 많이 절약할 수 있다. 특히 가장 큰 문제가 되는 점은 가능하면 증거를 적게 냈으면 하는 우리 기업들의 생각 그 자체이다. ‘내가 내 것을 낸다’는 소송법 체제하에서 기업을 운영해 온 우리나라의 기업들과 ‘일단 네 것을 다 보고 얘기하자’는 식으로 진행되는 소송법 체제하에서 기업을 운영해 온 영미법계 회사들은 서류의 제출에 대한 인식 자체가 너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자신에게 불리한 서류를 제출하는 것이 주저된다는 이유로 서류를 제출하지 않는 경우 법원의 제재 때문에 오히려 더 큰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은 이미 여러 사례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 기업들의 전반적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우리 기업들의 해외 진출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해외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이 차지하는 역할이 커지면 커질수록 원하든 원하지 않든 외국 법정에 서게 되는 일도 잦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제는 단순히 시장에 진출한 것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외국 법정에서도 과도한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철저한 대비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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