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28일 화요일

[판결] 이메일로 주고받은 사본 합의서도 효력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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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리그 포항 스틸러스 구단에서 활약한 가나 출신 축구선수 데릭 아사모아(34)가 포항으로 이적하는 과정 중 전 구단에게서 받지 못했던 이적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아사모아의 에이전트가 합의를 어겨 이적료를 받지 못했으므로 에이전트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법원이 아사모아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법원은 재판과정에서 선수와 구단들, 에이전트가 서명이 들어간 이적료 합의서 사본을 이메일로 주고 받았더라도 네 명의 서명이 들어간 합의서를 마지막 서명자인 에이전트가 사진으로 찍어 사진파일을 이메일로 선수와 구단에 보냈다면 그 합의는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대구고법 민사3부(재판장 진성철 부장판사)는 포항 스틸러스에서 뛰었던 데릭 아사모아가 에이전트 박모씨와 구단을 상대로 낸 약정금 청구소송 항소심(2014나21268)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1심을 취소하고 "박씨는 아사모아에게 17만 달러를 지급하라"며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박씨가 이적료와 관련해 아사모아와 포항, 아사모아의 전 구단인 PFC 로코모티프 소피아의 서명이 들어간 합의서에 서명을 한 뒤 이를 촬영한 사진파일을 최초 서명자인 선수와 포항구단에 보낸 점 등을 볼 때 네 명 사이 합의가 성립했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선수가 4자 합의서 원본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는 합의가 없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박씨가 합의에 따라 포항이 로코모티프에게 줘야 할 25만 달러에 대한 가압류를 취하해야 하는 데도, 합의를 무시한 채 압류 및 추심 명령을 받아 25만 달러 중 약 15만 달러를 챙겨 아사모아가 이적료 17만 달러를 받지 못했으므로 박씨는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포항은 2010년 박씨의 중개로 불가리아 리그에서 뛰고 있는 아사모아를 이적료 85만 달러에 영입하기로 하고 로코모티프에게 60만 달러를 선지급했다. 그러나 두 팀간 이적료 다툼이 생겼고, 이 다툼으로 로코모티프에게서 17만 달러를 받기로 한 아사모아는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로코모티프로부터 중개료 15만 8000달러 중 3만 달러만 받은 박씨는 포항이 로코모티프에게 줘야 할 25만 달러를 가압류 신청했다. 2012년 아사모아와 포항은 사태 해결을 위해 박씨의 가압류 취하를 전제로 한 합의서를 작성해 그 사본을 이메일로 로코모티프와 박씨에게 보냈다. 로코모티프는 합의서에 동의를 해 서명을 했다. 마지막으로 세 명의 서명이 든 합의서 사본을 받은 박씨는 서명을 한 뒤 사진을 찍어 합의서 사진파일을 로코모티프와 아사모아에게 이메일로 전송했다. 그러나 박씨는 가압류를 취하하지 않고 압류명령을 받아 1억6000여만원을 받았다. 아사모아는 박씨와 포항구단을 상대로 소를 냈으나 1심은 "선수가 당사자 4명이 서명한 합의서 원본을 소지하고 있지 않고, 원본의 존재도 인정할 수 없으므로 합의가 성립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2015년 7월 2일 목요일

    [디지털산책] 한국형 `전자증거개시 제도` 기대 크다

    [디지털산책] 한국형 `전자증거개시 제도` 기대 크다
    정관영 법무법인 정률 변호사


    주지하다시피 오늘날 영미권계 국가들은 세계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무역과 경제 질서도 그들에게 익숙한 영미법제(소위 글로벌 스탠더드)로 재편해나가고 있다. 디스커버리(Discovery, 증거개시)도 영미법계에 기원한 제도다. 쉽게 풀어 설명하면 '소송 전 단계에서 양 당사자 또는 제3자가 보유하고 있는 소송 관련 증거를 공개하는 절차'이다. 법원이 당사자에게 증거들을 '보존'할 것을 명령하고 그 증거들을 '공개'하도록 하는 게 디스커버리 제도의 핵심이다.

    디스커버리 제도의 역사는 깊다. 미국은 1938년 연방민사소송규칙(The Federal Rules of Civil procedure, FRCP)을 제정하면서 증거개시제도를 도입했으나 이 당시에는 당연히 전자적 정보(Electronically Stored Information, ESI)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제도의 취지는 공해소송, 제조물소송, 의료소송 등 이른바 '현대형 소송'에서 증거의 편재 현상이 나타나자 이를 방지하고자 함에 있었다. 급발진 사건 같은 제조물소송의 경우 증거가 제조자 측에 편재되어 있는 점, 의료소송의 경우 전문가인 의사 측에 전문지식이 편재되어 있는 점을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그런데 시행 과정에서 디스커버리 제도를 남용하는 사례들이 생기면서(제출을 미루면서 증거 공개에 과다한 비용을 책정하는 등) 남용을 막기 위한 조치들을 도입하다 보니 FRCP는 10차례에 걸쳐 개정하게 된다.

    그러다가 2002년 전자증거개시 관련 변호사 및 전문가 그리고 IT 전문가들이 주축이 된 세도나 회의(Sedona Conference)가 열리면서 비로소 이디스커버리(e-Discovery, 전자증거개시 제도)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세도나 회의는 수년간에 걸쳐 진행됐으며, 위 회의의 결과물인 세도나 원칙(Sedona Principle Best Practice Recommendations & Principles for Addressing Electronic Document Production)은 2004년, 2005년도에야 발표됐다. 세도나 원칙의 주요 내용으로는 '전자적' 증거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 당사자들이 대등하게 상대의 정보에 접근, 검색, 열람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 일방이 전자적 정보에 대하여 제출을 거부하려면 특권이나 면책 그 밖에 제출을 거부할 수 있는 사유를 상대방이나 법원에 고지해야 한다는 것, 법원에 제출하기 위한 전자적 정보의 사본이 원본과 일치하여야 한다는 것, 합리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정보(대용량 데이터 등)인 경우 신청인이 정보의 수집에 따른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이 원칙들이 2006년 개정 FRCP에 반영됨으로써 이디스커버리 제도가 시행됐다. 참고로 영국, 독일, 일본 등은 각국의 법제와 실무에 맞게 이디스커버리 제도를 운용하고 있어 국가마다 이디스커버리 관련 법률이나 소송규칙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미국의 디스커버리 제도에 의하면 당사자가 필요한 증거를 제출하지 못했을 때 혹은 상대방이 요구한 자료를 제출하지 못했을 때 당사자는 법원이 납득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를 밝혀야만 하고, 이유를 밝히지 못할 경우 고의적인 사실 은폐에 해당되어 소송에서 패소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현행 법제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실로 가혹한 제재(Sanction)가 가해질 수 있다. 우리나라 기업 중 미국 기업과 이디스커버리 과정에서 증거보존명령을 위반한 것이 밝혀지는 등으로 인하여 제재를 당한 사례가 있다.

    한편 우리나라도 대법원이 '사실심 충실화 마스터 플랜'의 핵심 방안의 하나로 '한국형 디스커버리(Discovery)' 제도 도입을 추진하여 사실상 증거개시 제도의 도입이 확정적이다. 나아가 우리나라는 EU와는 2016년 7월, 미국과는 2017년 3월 법률시장 완전개방을 앞두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증거개시 제도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적용되게 될 것이다. 어차피 도입할 바에는 우리의 법제와 실무에 맞는 증거개시 제도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 특히 오늘날 대부분의 정보가 디지털 형태로 저장되고 송수신되는 점을 감안해 IT 선진국인 우리나라 특유의 전자증거개시제도가 정착하기를 희망한다.

    정관영 법무법인 정률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