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27일 목요일

디지털 자료 증거 제한 형사소송법, 법 개정 시급 여론 확산

지난달 16일 대법원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과 관련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이 원 전 원장에게 사실상 무죄를 선고한 핵심 근거는 디지털 자료를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국정원 직원이 쓴 메일에 첨부된 '시큐리티'와 '425지논'이라는 제목의 파일 2개를 기초로 검찰이 주장한 트위터 계정 1257개 중 716개를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이 사용·관리했다고 인정했고 이 716개의 트위터 계정이 트윗·리트윗한 글 27만4800개를 국정원의 사이버활동으로 파악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두 파일에 대한 증거능력을 부정했다.

디지털 자료의 증거능력을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컴퓨터, 외장형 디스크 등 각종 정보저장매체를 이용한 정보 저장이 일상화돼 범죄수사를 통해 확보한 중요 증거가 디지털화 되고 있기 때문에 증거능력을 인정하기 위한 판단 기준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현행 법상 디지털 자료는 피의자가 시인할 경우에 한해 법정 증거로 채택된다. 

■檢 "수사 어떻게"..개정 보고서 제출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디지털 자료의 증거능력 기준 완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쪽은 검찰이다. 수사 과정에서 디지털 자료를 확보해도 피의자가 부인하면 현행법상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는 환경에서 범죄 수사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는 입장이다. 

검찰 내부적으로 형사소송법 개정을 위한 연구활동도 적극적이다. 서울중앙지검 공안부는 지난해 말부터 진행한 증거법 연구모임 결과를 올해 대검찰청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은 디지털 정보의 증거능력을 작성자 시인 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법무부에 제출,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디지털 자료는 피의자가 부인할 경우 증거로 인정되지 않는데 현행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증거"라며 "지금은 메일 등 디지털 자료를 수사하지 않으면 확보할 수 있는 범죄 증거가 극히 좁아진다"고 말했다. 

전문가 사이에서도 디지털자료의 증거능력을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특히 일정 요건이 충족되면 증거능력이 부여되는 일반 문서와 달리 영상녹화물은 극히 제한적인 범위에서만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윤지영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사는 "피의자를 신문해 진술을 기재한 조사와 해당 진술을 영상녹화한 기록물을 달리 평가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다"며 "과학기술을 활용,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영상녹화제도가 마련된 이상 일정 요건 하에 결과물이 법정에서 다퉈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게 합리적"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조작 위험성, 유출 가능성 등을 이유로 디지털 자료의 증거능력 인정에 부정적인 입장도 존재한다. 

■국회, 개정 추진..주요 선진국 증거인정 추세

정치권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디지털 자료의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판단 기준을 신설하는 내용의 개정안도 발의됐다. 피의자 진술에 더해 디지털포렌식 조사관 등 객관성을 확보한 제3자 진술로도 증거능력을 인정받도록 법에 명시한 것이다.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는 개정안은 내년 초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 

법사위 관계자는 "국회 일정상 9월 국감시즌이 지나가고 10월 정도에 해당 개정안이 상정돼 본격적으로 법률 심사를 거칠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여야가 디지털자료의 증거능력 인정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만큼 법안 통과가 긍정적인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편 법률 선진국은 일정 요건을 갖춘 경우 디지털 자료에 대한 증거능력을 인정하고 있다. 영국 형사소송법은 증인의 법정 외 진술이 기억이 생생한 때 녹화되고 증인의 녹화 진술 내용이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등 일정 요건을 갖출 때 영상녹화물의 증거능력을 인정한다. 미국은 연방차원에서 영상녹화제도에 대한 명문규정이 없지만 연방증거규칙에 기초해 진술서, 조서, 영상녹화물 등을 모두 법정 증거로 포함하고 있다. relee@fnnews.com 이승환 신아람 기자

2015년 7월 28일 화요일

[판결] 이메일로 주고받은 사본 합의서도 효력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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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리그 포항 스틸러스 구단에서 활약한 가나 출신 축구선수 데릭 아사모아(34)가 포항으로 이적하는 과정 중 전 구단에게서 받지 못했던 이적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아사모아의 에이전트가 합의를 어겨 이적료를 받지 못했으므로 에이전트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법원이 아사모아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법원은 재판과정에서 선수와 구단들, 에이전트가 서명이 들어간 이적료 합의서 사본을 이메일로 주고 받았더라도 네 명의 서명이 들어간 합의서를 마지막 서명자인 에이전트가 사진으로 찍어 사진파일을 이메일로 선수와 구단에 보냈다면 그 합의는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대구고법 민사3부(재판장 진성철 부장판사)는 포항 스틸러스에서 뛰었던 데릭 아사모아가 에이전트 박모씨와 구단을 상대로 낸 약정금 청구소송 항소심(2014나21268)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1심을 취소하고 "박씨는 아사모아에게 17만 달러를 지급하라"며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박씨가 이적료와 관련해 아사모아와 포항, 아사모아의 전 구단인 PFC 로코모티프 소피아의 서명이 들어간 합의서에 서명을 한 뒤 이를 촬영한 사진파일을 최초 서명자인 선수와 포항구단에 보낸 점 등을 볼 때 네 명 사이 합의가 성립했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선수가 4자 합의서 원본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는 합의가 없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박씨가 합의에 따라 포항이 로코모티프에게 줘야 할 25만 달러에 대한 가압류를 취하해야 하는 데도, 합의를 무시한 채 압류 및 추심 명령을 받아 25만 달러 중 약 15만 달러를 챙겨 아사모아가 이적료 17만 달러를 받지 못했으므로 박씨는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포항은 2010년 박씨의 중개로 불가리아 리그에서 뛰고 있는 아사모아를 이적료 85만 달러에 영입하기로 하고 로코모티프에게 60만 달러를 선지급했다. 그러나 두 팀간 이적료 다툼이 생겼고, 이 다툼으로 로코모티프에게서 17만 달러를 받기로 한 아사모아는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로코모티프로부터 중개료 15만 8000달러 중 3만 달러만 받은 박씨는 포항이 로코모티프에게 줘야 할 25만 달러를 가압류 신청했다. 2012년 아사모아와 포항은 사태 해결을 위해 박씨의 가압류 취하를 전제로 한 합의서를 작성해 그 사본을 이메일로 로코모티프와 박씨에게 보냈다. 로코모티프는 합의서에 동의를 해 서명을 했다. 마지막으로 세 명의 서명이 든 합의서 사본을 받은 박씨는 서명을 한 뒤 사진을 찍어 합의서 사진파일을 로코모티프와 아사모아에게 이메일로 전송했다. 그러나 박씨는 가압류를 취하하지 않고 압류명령을 받아 1억6000여만원을 받았다. 아사모아는 박씨와 포항구단을 상대로 소를 냈으나 1심은 "선수가 당사자 4명이 서명한 합의서 원본을 소지하고 있지 않고, 원본의 존재도 인정할 수 없으므로 합의가 성립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2015년 7월 2일 목요일

    [디지털산책] 한국형 `전자증거개시 제도` 기대 크다

    [디지털산책] 한국형 `전자증거개시 제도` 기대 크다
    정관영 법무법인 정률 변호사


    주지하다시피 오늘날 영미권계 국가들은 세계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무역과 경제 질서도 그들에게 익숙한 영미법제(소위 글로벌 스탠더드)로 재편해나가고 있다. 디스커버리(Discovery, 증거개시)도 영미법계에 기원한 제도다. 쉽게 풀어 설명하면 '소송 전 단계에서 양 당사자 또는 제3자가 보유하고 있는 소송 관련 증거를 공개하는 절차'이다. 법원이 당사자에게 증거들을 '보존'할 것을 명령하고 그 증거들을 '공개'하도록 하는 게 디스커버리 제도의 핵심이다.

    디스커버리 제도의 역사는 깊다. 미국은 1938년 연방민사소송규칙(The Federal Rules of Civil procedure, FRCP)을 제정하면서 증거개시제도를 도입했으나 이 당시에는 당연히 전자적 정보(Electronically Stored Information, ESI)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제도의 취지는 공해소송, 제조물소송, 의료소송 등 이른바 '현대형 소송'에서 증거의 편재 현상이 나타나자 이를 방지하고자 함에 있었다. 급발진 사건 같은 제조물소송의 경우 증거가 제조자 측에 편재되어 있는 점, 의료소송의 경우 전문가인 의사 측에 전문지식이 편재되어 있는 점을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그런데 시행 과정에서 디스커버리 제도를 남용하는 사례들이 생기면서(제출을 미루면서 증거 공개에 과다한 비용을 책정하는 등) 남용을 막기 위한 조치들을 도입하다 보니 FRCP는 10차례에 걸쳐 개정하게 된다.

    그러다가 2002년 전자증거개시 관련 변호사 및 전문가 그리고 IT 전문가들이 주축이 된 세도나 회의(Sedona Conference)가 열리면서 비로소 이디스커버리(e-Discovery, 전자증거개시 제도)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세도나 회의는 수년간에 걸쳐 진행됐으며, 위 회의의 결과물인 세도나 원칙(Sedona Principle Best Practice Recommendations & Principles for Addressing Electronic Document Production)은 2004년, 2005년도에야 발표됐다. 세도나 원칙의 주요 내용으로는 '전자적' 증거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 당사자들이 대등하게 상대의 정보에 접근, 검색, 열람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 일방이 전자적 정보에 대하여 제출을 거부하려면 특권이나 면책 그 밖에 제출을 거부할 수 있는 사유를 상대방이나 법원에 고지해야 한다는 것, 법원에 제출하기 위한 전자적 정보의 사본이 원본과 일치하여야 한다는 것, 합리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정보(대용량 데이터 등)인 경우 신청인이 정보의 수집에 따른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이 원칙들이 2006년 개정 FRCP에 반영됨으로써 이디스커버리 제도가 시행됐다. 참고로 영국, 독일, 일본 등은 각국의 법제와 실무에 맞게 이디스커버리 제도를 운용하고 있어 국가마다 이디스커버리 관련 법률이나 소송규칙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미국의 디스커버리 제도에 의하면 당사자가 필요한 증거를 제출하지 못했을 때 혹은 상대방이 요구한 자료를 제출하지 못했을 때 당사자는 법원이 납득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를 밝혀야만 하고, 이유를 밝히지 못할 경우 고의적인 사실 은폐에 해당되어 소송에서 패소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현행 법제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실로 가혹한 제재(Sanction)가 가해질 수 있다. 우리나라 기업 중 미국 기업과 이디스커버리 과정에서 증거보존명령을 위반한 것이 밝혀지는 등으로 인하여 제재를 당한 사례가 있다.

    한편 우리나라도 대법원이 '사실심 충실화 마스터 플랜'의 핵심 방안의 하나로 '한국형 디스커버리(Discovery)' 제도 도입을 추진하여 사실상 증거개시 제도의 도입이 확정적이다. 나아가 우리나라는 EU와는 2016년 7월, 미국과는 2017년 3월 법률시장 완전개방을 앞두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증거개시 제도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적용되게 될 것이다. 어차피 도입할 바에는 우리의 법제와 실무에 맞는 증거개시 제도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 특히 오늘날 대부분의 정보가 디지털 형태로 저장되고 송수신되는 점을 감안해 IT 선진국인 우리나라 특유의 전자증거개시제도가 정착하기를 희망한다.

    정관영 법무법인 정률 변호사